logo

첫 체험 ―― 리닝, 도쿄에서 ‘구이즈’찾기

2013/06/10

아티스트 리닝은, 고향인 지난시 특유의 먼지투성이 공기와 현대중국의 특수한 정치체재 하에서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낙담, 울분과 절망을 가지고 도쿄로 왔다.
현대 중국인에게 있어서, ‘일본’이란 분명히 가장 익숙한 기호다. ‘일본’에 대한 중국인의 생각을 간단히 말하면, 1937년부터 1945년 사이에 벌어진 전쟁일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에서의 ‘구이즈’(역주. 일본인에 대한 차별적 호칭)는, (예전에는 중국인 배우가 상스러운 말라깽이를 연기했지만, 최근에는 중국에서 생활하는 젊은 일본인 배우가 ‘구이즈 배우’로 등장한다), 틀에 박힌 이미지를 끊임없이 주입시키며 나라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리닝은 일본에서 ‘구이즈’를 찾고자 했지만, 그가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동일하게 희로애락을 느끼고 개성과 감정 또한 서로 다른 일본인들 뿐이었다. 결국 그가 갖고 있던 정형화된 이미지는 무너졌고, 그 지점에서 그는 <해소>를 구상하게 된 것이다.

물론 작품의 구상으로서는 비교적 단순한 것이지만, 중국과 일본의 현 상황에 있어서 이러한 작품은 대단히 특별하게 느껴진다. 리닝은 (작품의 오프닝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알맹이가 없고 폐쇄적인 중국의 민족주의를 비꼬는데, 그 시점은 아이다 마코토가 보여주는 일본 민족주의에 대한 풍자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르다.

국가, 민족, 인종의 개념이 ‘해소’되고 개인의 지위가 향상되면, 개인은 두번 다시 ‘집단’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다.

유행하는 우스개소리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영어시험의 작문 주제가, ‘식량부족 문제에 대해 당신 개인의 견해를 기술하여라’였다. 아프리카의 학생은 작문을 하지 않고 되물었다. “식량이 뭐죠?” 미국의 학생도 되물었다. “부족이라는게 뭐죠?” 중국의 학생은 “개인의 견해가 뭐지?” 라고 했다는.
집단주의가 숭배되는 중국에서 개인의 개념은 교육시스템과 이데올로기, 관습에 의해 교묘하게 파괴된다. 이 중압적인 체제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아티스트로서, 리닝이 중국의 문화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초기 작품은 그 구상이 비교적 단순하고 표면적이지만, 활동의 시간과 규모 등에서 제한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주제가 집단의 와해이고 틀에 박힌 이미지와 범주화의 불식이기는 하나, 리서치와 창작의 방법론은 기본적으로 아직 범주화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는 인터뷰의 대상자의 연령을 정하면서 그 개인이 그 연령대의 대표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당신들 일본인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너희 일본의 중학생들은 무엇을 좋아해?”와 같이 질문을 할 때, 대상자에게 그들이 속하는 그룹의 대표로서의 대답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내용에는 명백한 유도질문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는 귀중한 개인과 개인의 진짜 교류가 불가능해지고 인터뷰는 표면적인 것에서 그치고 마는데, 이는 그의 작품 ‘해소’가 애초에 의도한 목적과는 모순되는 것이다. 시간 등의 제약이 없었더라면 리닝의 인터뷰는 더 질이 높고 깊이있는 것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80년대 이후 중국의 아티스트는 개인을 부각시키고 집단을 와해시키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문화대혁명에서 있었던 민중운동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람들의 마음을 아직도 뒤덮고 있다. 체제하의 주류 발언들에 의한 압력에 대한 반동으로, 최근 30년간 중국 현대예술은 사회적 책임, 예술의 정치화에 저항해 왔다. 리닝의 생각 또한,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큰 흐름에 접해 있다. 이것은 서양에서 1968년 학생운동이 끼친 영향과도 유사하지만, 중국의 특수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류의 저항은 아직도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 r:ead 프로그램의 목적은 교류에 있다. 문화교류에서는 틀에 박힌 이미지로부터 벗어나 민족에 대한 편견을 던져 버리고 ‘개인과 개인’이 마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개인간의 교류가 깊어져야 그제서야 점차 깊이 있는 사상이 생겨날 수 있다. 개혁개방정책이 시작된지 30년이 지났지만, 중국은 상대적으로는 여전히 폐쇄적인 국가다. 따라서 이번 r:ead는, 중국의 아티스트에게 있어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