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비기념비적 수법에 따른 기념비 만드는 방법

2014/07/18

본 사업 타이틀 r:ead(=residency, east, asia, dialogue)에서도 명확하게 알 수 있듯이, 이 프로그램은 동아시아라고 묶이는 한국、중국、대만、일본을 출자로 한 멤버의 「대화」와 「사고」를 위한 자리였다. 이 전제조건인 프레임을 얼마나 포지티브하게 받아들여, 거기에다 탈구축 할 수 있게 확장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일본팀으로 초청받은 시타미치 모토유키와 나는 강하게 의식하며 작업을 하였다. 다시말해, 최종적인 아웃 풋으로서의 큰 글자의 작품을 이 레지던스에서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그 몇 발자국 앞에 있는 하나의 방향으로 사정을 정하기까지의 프로세스를 어떻게 연결 할 것인가를 의식하고, 사람들과 대화의 장에서 적극적으로 즐기며, 불완전하고 단편적인 것을 억지로 눈에 띄이게 하는 것에 주목하였다. 모뉴멘털(=상징적)인 「작품」이라는 형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논의와 사고의 과정을 투명화하여 공개해 나가는 것을 바람직스럽게 여기는 것은 굉장히 드문 현장이다. 그것으로 인해, 직접「동아시아」라는 것이 주제가 안되더라도, 이러한 장소 그 자체가 r:ead라는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골격이 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단지, 일주일간의 참가였었기에 결과적으로는 프레젠테이션이라는 아웃 풋을 향해 집중해야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반드시 충분한 시간이었다고는 말 할 수 없으나, 대화와 사고를 위한 장소를 준비해주었기에, 거기에 응하는 방법으로서 새로운 방향으로의 키를 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몇가지의 반모뉴멘털(=비기념비적) 적인 단편을 발견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최종적으로 『「부재」의 형태─모뉴멘트 재고(再考)』라는 타이틀로, 얼터너티브적인 모뉴멘트(=기념비적 존재)라고 정의 할 수 있는 물건들을 수집한 아이디어 스크랩북을 제작하였다. 누구라도 한 눈에 인식 할 수 있는 모든 모뉴멘트에서는 벗어나지만, 다른 지점에서 그 존재를 바라보면 상징성이나 기념비적 성격을 볼 수 있는 것이나, 혹은 어떤 대상자에게 있어서는 기억을 건드릴 수 있는 것 등, 한번 보면 명확한 윤곽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측면에서는 기념비성을 가진 존재를 광의로 「모뉴멘트」로 받아들이고, 조금 벗어난 관점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에서, 「모뉴멘트」나 「모뉴멘털」이라는 말에 대해서 조금 설명하고 싶다.
모뉴멘트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인 사건이나 인물을 공공적, 영구적으로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작물 혹은 건조물. 또한 문화재 관계의 용어로서는 유적지에 대해, 지상에 세워진 모든 건조물, 기념물을 포함한 모뉴멘트이다.」
(브리타니카국제백과사전)이라고 한다. 조금 더 간략하게 말하자면「기념건조물. 기념비・기념상 등. 유적, 불공의 업적, 금자탑」(일본국어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원천적인 의미를 조금 확대 해석해서, 기념비성이나 상징성을 만들어내는 우리들 인간의 행위에 착목하여, 형태를 가지지 않는 「행위」등을 기억으로 새긴 기념비(=모뉴멘트)로서 정의하려고 하는 시도이다. 강고한 물질으로서의 모뉴멘트가 아니라, 부드러운 행위나 기억을 남기는 조그마한, 근처에 있을 법한 당연한 존재. 바꾸어 말하자면, 어떤 특정한 관점을 부여함으로서 기념비성을 획득하는 반모뉴멘털(=비기념비적)인 모뉴멘트의 탐구를 시도한 것이다. 작품이란 것은 원래 기념비적(혹은 상징적)인 존재이지만, 그 기념비까지 이어지는 프로세스에 따라 자각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이번 우리들이 탐구한 것은 비기념비적(=반모뉴멘털)인 기념비(=모뉴멘트)
라는 언뜻 보면 모순된 것이다. 작품을 제작발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라는 기념비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현재화(現在化)하는 것, 그리고 불특정다수의, 말하자면 「모두」를 향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특정한, 명확한 대상에게 울려퍼지는 모뉴멘트의 형태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러한 모뉴멘트를「상온의」「부드러운」「형태가 없는」이라고 하는 대강의 모뉴멘트와는 떨어진 이미지를 부여하는 말로 변용하는 것으로, 형태가 아니라 상태나 행위에 중점을 두어, 별도의 각도에서 기념비성이나 상징성을 고찰하였다. 강고한 물질성이나 절대적인 존재감이라는 모뉴멘트의 기존의 이미지를 표상으로하는 특징과는 장반대인 「부재」가 가지는 상징성을 탐구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절대적인 형태나 존재가 아닌, 생성변화하는 「부재의 재(在)」 혹은 「부재의 형태」를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타미치가 지금까지 만들어 온 작품군을 돌이켜보고자 한다. 제2차세계대전까지 일본 안에서 만들어진 전쟁을 위한 건조물인 토치카나 엄폐호, 포대터 등 수년간 후의 현재의 모습을 풍경으로 찍은 사진시리즈《전쟁의 형태》(fig.1), 그리고 현재 일본의 국경선 밖에 남겨진 토리이의 모습을 찍은 《torii》(fig.2)의 시리즈 등이 있다. 예를들어, 《전쟁의 형태》에 등장하는 기능을 박탈당한 전쟁유구가 매몰되어 있는 현재의 풍경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전쟁을 경험 한 세대가 떠나, 많은 사람의 의식에서 지워지려고 하는 전쟁의 기억을 불러들이고, 《torii》는 토리이가 있었던 장소에는 이전 일본인의 생활이 있었던 것을 말한다. 어느 쪽도 본래의 의미나 형태의 일부가 소실 됨으로 인해, 그 당시의 것을 상기시키는 소프트적인 기념비(=모뉴멘트)로서 기능하는 것을 찍은 풍경이다. 또한 시타미치로 인해 잊혀져간 존재를 사진이란 단면을 통해 모뉴멘트화 되는 행위이기도 하다. 어떤 목적을 위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세월이 흐름과 동시에 그 기능을 소실하고, 존재 이유를 보류해 둔 형태로 풍경 안에 남겨졌다. 이것들은 보존이라는 명목에 의해 울타리로 둘러쳐지면, 전형적인 모뉴멘트로 변모한다. 시타미치는 그러한 획일적인 사고정지에 빠지게 하는 모뉴멘트화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반대로 그대로의 현재의 풍경을 부감적으로 취해, 사진으로서 수집하는 행위로 인해, 소프트한 모뉴멘트화를 계획했다.

fig.1《戦争のかたち》
fig1_戦争のかたち
Courtesy of Motoyuki Shitamichi

fig.2《torii》
fig2_torii_NewTaichungTaiwan
Courtesy of Motoyuki Shitamichi

또한, 포대터에서 불꽃을 쏘거나, 토치카를 일시적으로 불법거주하는 방법으로 전쟁유구의 재이용계획을 만들어 낸《Re-Fort Project》(fig.3)는, 누구도 그 존재에 눈길을 두지 않는 조용히 배회하는 유구에, 유희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이전에 있었던 전쟁에 대한 기억을 두루 생각하게 하는 장소로 만들어낸다.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서 유구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선명하게 변환시키고, 동시에 그 유구군을 사람에게 메시지나 역사를 전하는 모뉴멘트로 소프트하게 변환시킨다.
또 한편으로, 지진으로 생긴 재해 후, 바이크를 타고 일본 전국을 일주하는 여행에서 찍은 논두렁길에 있는 한 장의 나무판이나, 단차를 해소하기 위해 쌓아 올린 콘크리트 블록 등, 어디에도 존재하는 주변의 최소한의 요소에 의해,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여기저기를 연결시키는 극소한 것이 「다리」라고 규정하고, 그것을 스냅으로 수집한《bridge》(fig.4) 시리즈가 있다. 이것들은 많은 사람이 그냥 지나쳐 버리는 당연한 것으로, 동시에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기에, 다음날이면 없어져 버릴 수 있는 덧없는, 이거야 말로 이른바 모뉴멘트와는 정반대적인 존재이다. 어떤 시대, 어떤 장소에도 존재하는 어떤 종류의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덧없음이나, 그것들을 생성한 누군가가 가지는 무의식의 창조성이나 미의식을 가지고 정착시키는 것으로, 역시 소프트한 방법으로 모뉴멘트화 시켰다.

fig.3《Re-Fort Project》
fig3_1refort4

fig3-2_Re-Fort5
Courtesy of Motoyuki Shitamichi

fig.4《bridge》
fig4_bridge1103161751
Courtesy of Motoyuki Shitamichi

이 외에도 설국의 길 이 안보이는 장소를 사람들이 걸어가면서 남긴 발자국으로 인해 새로이 만들어진 길을 찍은 《crossover》등도, 눈에 찍힌 발자국이라는 수시간 후에 없어지고 마는 「형태」를 정착시키는 행위로, 이것도 시타미치 다운 모뉴멘트화라고 말 할 수 있다. 다시말해, 시타미치는 본질적인 반모뉴멘털(=비기념비적인)적인 존재로 망각되어 진 것이나, 형태가 지워져가고 마는 부재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처럼, 소프트한 모뉴멘트를 작품화에 따라 계속해서 생성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연장 선상에서, 「부재」그 자체의 본연의 자세를 탐구하는, 보다 의식적인 반모뉴멘털적인 모뉴멘트를 생성하는 과정을 r:ead라는 대화의 테이블에 가지고 옴으로 인해, 공유나 단절을 통해, 새로운 방법론을 획득하는 것을 시도한 것이, 본 프로젝트의 프레임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최종 프레젠테이션에 게스트로서 참가한 미디어 비평가인 카츠라 에시시(桂英史)
씨는 「모뉴멘트는 반드시 장소 특수성(Site-specific)이다」라고 간략하게 말했다. 원래 시타미치와 내가 지금까지 관계해 온 것은, 각자 직업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장소 특수성/모뉴멘트와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것으로, 카츠라씨의 발언은 사후적으로 우리들의 활동에 한가지 보조선을 부여해 주었다.

다음으로 본인의 지금까지의 활동에 대해 조금 언급하고자 한다. 나의 거점은 아티스트.인.레지던스를 주 사업으로 하고 있는 작은 기관으로, 그 성질(性質)적으로도 많은 사람보다는,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을 향한 것을 탐구해 왔다. 레지던스에서는 최종적인 전람회나 완성된 작품을 기념비(모뉴멘트)로서 생성하기 보다는,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을 얼마나 경험하는 가를 중시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 경로의 보다 좋은 설계를 계속해서 생각해 왔다. 커다란 규모로 하나의 명해한 것을 생성해 내는 것 뿐인 것에는 왠지모르게 위화감이나 회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 뿐 만 아니라, 제한 된 조건 안에서 별도의 길이나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 다시말해, 제약 안에서「얼터너티브」한 길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필연적으로 소위 기념비적인 것인 아닌 방법으로, 형태를 부여하는 것을 실천해 오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약 10년가까이 야마쿠치나 아오모리라는 작은 지방도시를 거점으로 활동해 왔지만, 왜 그런 선택을 해 왔는가에 대해 이번 r:ead를 통해 자신 안에서 조금 클리어 되는 부분이 있어, 여기에서 그것에 관해 조금 이야기 하고자 한다. 원래,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계기는 건축을 전공한 대학원시절에 바르셀로나에서 1년간 생활 한 것에 있다. 거기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가치관이었다. 역사있는 도시이지만, 현재의 지정학상은 유럽 주변의 토지라고 밖에 말 할 수 없는 도시에서 「주변」이기에 가질 수 있는 평온한 모습과 다양성을 알게 되었다. 신자유주의적 사고와는 확실하게 거리를 두고, 경제활동이나 편리성이 아닌, 그 장소다운 생활을 영위해 가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강한 의식이 굉장히 신선했다. 시간에 대한 감각도, 어딘가 주관적이며 시계의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감각이 매우 흥미로웠다. 확실하게 다른 가치관이었다. 이 경험을 계기로, 일본에 있어서 전후의 자본주의경제를 기초로 하는 체계 안에서는, 주변과 서열을 정하게 되는 지방도시의 존재나 가능성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 결과, 본주(本州)의 양극 토지에서 10년간 자신의 신체와 생활의 거점을 두고, 예술을 기점으로 지방이라는 문제와 가능성을 탐구하게 되었다. 그것은, 큰 이야기가 아니라, 작은 수맥을 발견하고 연결하려고 하는 시도였다. 그리고 약하지만, 여러가지것에 대해 다양성과 복잡성이라는 가치로 판단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이 배경에는 「비판적 지역주의(=Critical regionalism)」 라는 생각의 영향이 있다. 이 표현은 1980년대 건축이론가인 알렉산더 초니스와 리안느 루페부루가 처음으로 표제하고, 그들과는 조금 다른 용법으로 건축사가(史家)인 케네스 프램톤이 사용한 건축론을 전개한 것으로 널리 퍼져, 근년에는 가야트리 스피박과 구디스 버틀러가 문화연구나 정치이론에도 채용하고 있다. 프램톤은 현대문명을 긍정하고 모더니즘 건축이 가지는 보편적・진보적 특질을 비판적인 시점을 가진 상태에서 받아들이고, 동시에 그 건축의 지리적 문맥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고 했다. 건축에 있어서의 무특정 장소나 장소의 아이덴티티의 결여를, 시각만이 아니라 촉각이나 청각등 신체감각에 종합적으로 호소하는 것으로 지역적 특색을 부여, 저항의 건축으로서 독자적 존재가 성립한다고 제창한다. 물론 현재의 사회에 프램톤의 이 사고는 단순하게 적용하는 것은 너무나도 안이 할 수 있지만, 글로버리제이션의 진행과 다양한 격차 문제가 분출하고 있는 현재에 있어서, 그러한 커다란 흐름에 부주의하게 휩쓸리지 않기 위한 「저항」의 수단으로서 개별로 이 사고법을 적용하는 것은 유효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신화적인 하나의 큰 이야기를 그리는 것으로 가치를 끄집어 낼 수 없게 된 현상에 있어서, 먼저 자신의 발 밑부터 수정하여, 각각의 토지가 가지고 있는 작은 가능성을 끄집어 내어, 정보 환경의 발전과 함께 어떤 장소나 사람과도 비교적 용이하게 다이렉트로 연결되는 것을 인식하는 것으로, 적절한 장소로의 그 가능성을 접속해가는 것이 될 것이다. 다시말해, 별도의 장소, 별도의 가능성으로의 접속법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단순하게 현상을 한탄하며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의 수단으로서 얼터너티브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큰 기념비적인 구제와 같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작아도 여러가지 방향성을 가진 자발적인 내발(内発)적인 활동으로서 탐구해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작년 큐레이터로 관계한 토와다오이라세(十和田奥入瀬)예술제 를 조금 소개하고 싶다. 이 예술제는, 예술제라고 부르기에는 아주 작은 규모와 예산으로, 인구 6만명 정도의 작은 지방 소도시인 토와다시에서 개최한 것이다. 장소는 크게 두군데로 나뉘어, 한군데가 토와다시 중심가에 위치한 토와다시 현대미술관, 그리고 또 한군데는 중심가에서 차로 30분정도의 거리에 있는 토와다시 주변의 오이라세・토와다호(湖) 지역이다. 토와다시 중심가에서는 현대미술관이 오픈해 방문자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한편, 80년대 관광지로서 번영했던 오이라세나 토와다호 주변은 관광산업이 크게 쇠퇴하여, 취업인구도 줄어들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토와다시 내에서도 중심과 주변은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 현상이다. 예술제에서는 쇠퇴하고만 시 주변부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의도도 있어, 미술관 뿐 만아니라, 오이라세 지역 일체를 개최장소로 했다. 오이라세나 토와다호에는 아주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 그것은 관광산업이 얼마나 쇠퇴하던지 상관없는 재산이다. 그리고 이 자연도 실은 인간이 관계하는 것으로 유지되고 있는 풍경이며, 자연이란 어떠한 상태를 말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끔 한다. 단, 어떤 자원을 가지고 있던, 결국 그것을 누구를 향해 어떻게 어필 할 것인가가 어느정도 해결되지 않으면, 그 가치는 전달되지 않는다. 버블 붕괴 후에, 기업의 위안여행이나 여행대리점이 만든 단체패키지여행의 유행이 사라지자, 현재와 같은 보다 적은 단위(개인이나 가족, 친구)로 여행이 주류가 된 상황에 대해서도, 결국 단체여행에 대응했던 관광지의 모습 밖에 제시하지 못했던 이 지역이 쇠퇴한 것은 필연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존재하지 못하게 된 대상을 향해서 발신해도, 그것은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한 배경을 고려하며 수단도 없이 넓은 이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보인 것은 몇가지의 모뉴멘트였다. 토와다호반에 세워진 타카무라 코우타로우(高村光太郎)에 의한 《처녀의 상(像)》, 오이라세지역에 다수 존재하는 오오마치 케이게츠(大町桂
月)에 의한 시비(句碑)등의 기념비군, 혹은 토와다신사 등의 건조물이나, 《궁중의 폭포》와 같은 이름을 부여받은 오이라세 계류를 따라서 폭포나 강, 바위 등의 명소가 그것이다. 이것들이 토와다오이라세의 겉쪽의 아름다운 역사를 나타내는 정(正)의 모뉴멘트라고 한다면, 그 뒷면에는 폐업한 무수의 여관이나 호텔군 등의 부(負)의 모뉴멘트가 존재한다. 통상의 관광여행에서는 정의 모뉴멘트 만이 사람 눈에 담기고, 부의 모뉴멘트는 덮어 숨긴다. 그러나, 이 부의 모뉴멘트야 말로, 지방도시가 더듬어 온 역사나, 왜 현재의 상황에 빠지고 말았는가를 나타내는 여러가지 힌트가 숨어 있음에 틀림없다. 그라운드 제로나 아우슈비츠, 혹은 체르노빌 등 재해 피해 적지(跡地)나 전쟁 적지 등을 돌아보는, 인류의 죽음이나 슬픔을 대상으로 한 투어를「다크 투어리즘」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역사적인 비극이나 부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으로 인해, 이해되는 것은 다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아즈마 히로키(東浩紀) 등에 의해 후쿠시마 제일 원자력발전소 관광지화 계획 등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다크 투어리즘에 의한 후쿠시마라는 부의 유산으로서 라벨이 붙는 장소를 부흥시켜 가는 하나의 가능성과 비평성을 갖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예술제에 참가한 PortB를 주군하고 있는 타카야마 아키라(高山明)는 Port관광리서치센터라는 단체를 실제로 일반사단법인으로 설립하고, 그 리서치활동의 일환으로서 토와다오이라세에서 관광에 얽힌 언론 이벤트를 개최, 다음 날에는 그 다큐멘트 영상을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는 같은 장소, 같은시간에 전시작품으로 상영했다.
오이라세 지역과 같이 단체여행의 감소와 함께 쇠퇴하게 된 관광지는 일본전국에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토지에 아트작품이라는 새로운 모뉴멘트를 다수 설치해서, 그것을 순례하는 여행의 형태는 에치고츠마리(越後妻有)나 세토우치(瀬戸内)등에서 이미 시도하여 많은 관광객을 획득해, 예술로 인한 지역이나 관광의 재흥(再興)이라는 일종의 성공모델로서 이야기 되고 있다. 그러나 토와다오이라세에 있어서는, 거기에 있는 역사나 부(負)의 경험을 새로운 모뉴멘트로 뒤엎는, 위에서 언급한 방법이 아니라, 현상을 긍정하는 것 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이미 있는 부의 모뉴멘트를 어떠한 형태로 재생하고, 정(正)의 모뉴멘트와 함께 공개하는 것으로, 그 토지의 보기 좋은 표면만이 아니라 뒷면에 있는 현재의 곤란도 포함해서 보여주려는 방법을 모색해, 이른바 순례 기념비로서의 아트작품의 설치를 배제한 것이, 토와다오이라세예술제이었다. 물론 그 이념과는 정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던 것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 토지나 건물 등의 역사에서 눈을 돌리는 일 없이, 그것들이 발하는 조그마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보여지는 지역의 미래라는 것도 있지 않는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운드 아티스트 우메다 테츠야(梅田哲也), 퍼포먼스유니트 콘탁트곤조(コンタクトゴンゾ), 그리고 사진가 시가리에코(志賀理江子), 3명의 아티스트가 6개월 동안 협동하여 만들어 낸, 수년 전에 휴업한 호텔 건물 자체를 작품화 한《수산보양소》
(fig.5)는, 이러한 예술제의 태도를 상징하는 반모뉴멘털(비기념비적)인 모뉴멘트였다. 이 작품은 반폐허가 된 호텔을 아티스트가 철저하게 청소하고, 불필요한 것을 없애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다. 「뺄셈의 방법으로 만들다」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작품스러운거나 오브젝트와 같은 것을 첨가하는 것을 피하고, 물의 흐름을 바꾸거나, 빛을 유도하는 정도의 방법으로 기능을 잃은 건축을 조금씩 주변 환경에 가깝게 하는 작업을 실시했다. 극단적으로 요소를 빼앗겨버린 호텔 내부를 돌아보면, 조용히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리고, 날씨가 좋은 날은 여러가지의 빛이 들어오고, 불온한 공기를 느끼기도 하지만, 상쾌한 바람을 맞이하기도 한다. 인공과 자연의 중간에 있는 듯한 불가사이한 상태에서, 폐허나 유적처럼 느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버블기 호텔의 모습도 울타리의 틈으로 보이는, 불가사이한 장소의 경험이다. 무대의 클라이막스와 같이 상징적이며, 누구라도 부풀어오르는 상황은 떨어지지 않고, 조금씩 사소한 변화만이 연속된다. 거대한 스펙타클을 철저하게 배제한 공간은, 어떤 종류의 패럴렐 월즈를 경험하는 감각과도 가깝다. 일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거기에는 신경을 예민하게 하면 보이는, 들리는, 냄새나는, 사소하면서 풍부한 경험이 있다. 스펙타클한 모뉴멘트가 아니라, 비스펙타클하며 사소한 경험을 생성한다. 명확하며 거대한 형태는 아니지만, 눈을 돌리려는, 귀를 기울이려는 사람에게는 풍부하게 울리고, 그 경험을 기억에 새기는 얼터너티브하며 반모뉴멘털적인 모뉴멘트이다. 특가품이 되는 옥외조각과 같은 이른바 기념비적인 모뉴멘트를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오이라세라는 지역에 흐르는 시간이나 펼쳐진 공간을 반모뉴멘털적인 작품군을 통해서 경험하는 것이, 지방도시에서의 이 예술제의 시도이었다.

fig.5 수산보양소》

Courtesy of the artists, Taketoshi Watanabe and Towada Art Center

이러한 경험 위에, 나와는 다른 각도에서 「모뉴멘트」의 모습을 창작활동을 통해 탐구해 온 시타미치 모토유키와 같이, 대화와 사고를 위한 r:ead라는 장소에서, 기념비적인 작품만들기가 아닌, 현상을 철저하게 공유하는 것으로 새로운 전개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서로가 35세라는 연령에 달해, 지금까지의 약10년을 돌이켜보면서, 앞으로 향해 가기 위한 충분한 자극을 주는 이웃 사람들과의 시간은 정말로 귀중했다. 시타미치의 말을 빌리면 「미래에 개봉되어야 하는」 새로운 모뉴멘트의 모습을 탐구해 왔다. 무언가 커다란 결과를 이 자리에서 만들어내기 보다는, 그 사고 과정을 일단 쏟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아직 확신을 가지지 못한 부화 한지 얼마 안된 여린 아이디어를, 감히 프로페셔널한 이웃사람들에게 좌우간 주저하지 않고 개시하는 것으로, 헤매거나 위화감, 이상함 마저도 공유하면서, 새로운 길을 계속해서 찾았다. 작품이나 전람회와 같이 고결하게 결정화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확실하지 않은」것이나 모뉴멘트적인 상태에 다다르지 않은 것을 개시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요구받는 것은 굉장히 자극적인 경험이었다. 안이하게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결과 만이 요구되어지는 현재 사회에 있어서, 그렇지 않은 시행착오나 불가능한 것, 실패까지도 긍정적일 수 있는 작은 저항의 장소를 더욱 공(公)이 만들어야만 한다. 분쟁 등은 서로가 향하고 있는 것이 조금 다른 것이나, 사소한 사항의 불이해가 계기가 되어 일어난다. r:ead와 같은 자리에서 큰 총의나 신화적 감동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기에, 언뜻 봐서 불모라고 생각 할 수 도 있지만, 이러한 작은 저항의 현장이야 말로, 각 문제에 대한 다른 해결법을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을 수 있다. 아티스트・인・레지던스라는 것은 원래 그러한 창작 프로세스에 의식적으로 되기 위한 반모뉴멘털적인 장소이다. 그 프로세스에 최대한의 가치를 두는 이러한 자리가, 제일 순화된 얼터너티브적인 아티스트・인・레지던스의 방법으로서 여러군데에서 각각의 방법으로 구축하여 발전해 가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