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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에 있는 자신

2015/01/21

일반적으로, 한 나라가 남에 대한 인식은 개인적, 국부의 대외적인 인식들을 쌓였을 것이니 오해가 발생하는 것이 십상이다. 특히 동아시아 역사상, 항상 실체(實體) 간의 인식은 서로 떨어지고, 관념적으로 자신이 상대방을 초월하는 우월감을 가지고, ‘편의의 오해’로 서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편의의 오해’의 역사: 한국과 중국이 서로 알게 된 궤적” 백영서

나는 이번 r:ead #3 “아시아도시, 도시 속의 노마드(Asian City, Nomad People)”프로그램을 참여하는 계기에, 소위 “대화” 가 무엇인지를 계속 생각해 왔다. 동아시아의 창작자들이 서로 간에 미묘한 관계가 존재한다. 서로 다른 생활, 생명경험, 맥락을 가지고 있지만 지역 정치, 역사, 문화의 발전으로 말하자면 동아시아의 주민들의 관계는 아시아인과 유럽인의 관계, 혹은 아시아인과 인도인의 관계, 심지어 동남아 주민 사이의 관계와 다르다. 그래서 동아시아 서로의 대화는 우선적으로 많은 비슷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 서로 대화 시 필수적인 우선 조건이다. 그러나 이 선천적인 지역성으로 한국 학자 백영서가 지적한 ‘편의의 오해’처럼 자기가 자신의 과도한 상상력으로 상대방을 이해하였는지를 주의해야 한다.
r:ead #3 진행하기 전에 모든 참여자가 이미 마음에 동아시아 지도를 그려 놓었을 것이다. 이 지도는 상대방과 대화할 때 관계를 정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위치, 자기 자신의 위치를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대화, 브리핑, 방문 등 활동을 시작한 후에 이 이미 표기해 좋은 사물(바로 ‘편의의 오해’)은 약화하기 시작하여 더 많은 미스터리, 의견, 부호, 차이를 상대방에게 넘겨준다. 이는 ‘대화’가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어떻게 이 차이를 넘어 가는 것도 아주 어려운 요점이다.
내가 여기서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진정한 이해를 달성하느냐’ 의 가정적인 문지가 아니다. 모든 이해가 ‘차별’ 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명확한 주체의식을 파악한다고 착각했다면 소위 ‘이해’ 는 자기 자신이 가정한 주체에서 투사한 의견일 가능성이 커다. 이것이 바로 ‘편의의 오해’ 의 기본 양태이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점은 ‘이해’ (오해의 가능성이 있음)가 동아시아 대화 관계 중 가장 중요한 전제이다. 예를 들어 대만의 역사 맥락으로 오키나와나 한국을 비유하면 대만역사를 확장할 보충을 얻을 것이 필연적이다. 그러나 다른 차원에서 그가 대조하는 다른 역사의 중요성과 긴밀성을 약화시켰다. 또는 편면적인 해독은 역사에 대한 오판을 야기할 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 결여된 ‘이해’를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럼, 우리가 대화 관계에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내 생각에는 여기서 ‘창작’ 의 개념은 더욱 중요하다. 어떻게 창작할 것인가? 대화가 더 나아가 ‘창작성?’ 이 존재하는지의 가능성이 크다. 자기의 입장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교류뿐만 아니라 어느 차원에서 ‘자기가 벗겨진’ 부분도 노출해야 한다. ‘자기가 벗겨진’ 부분은 서로 이해하기에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이번 참여의 경험으로 보니, 일본 작가 온유쥬가 국적, 언어를 스위칭하는 느낌이 ‘자기가 벗겨진’ 상태를 대표로 하여, 여기서의 ‘자기’가 ‘주체’의 개념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 자기 자신에 탈락된 전통 민족주의, 혈통주의, 지역주의로 구성하는 ‘주체’관렴은 동아시아 예술가들의 소통 경로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벗겨진 것’ 과 ‘희행한 것’ 도 다르다. 예를 들어 강렬하고 충격적인 여행을 경험한 다음에 우리가 자기의 신체에 ‘낯선 자기’를 찾게 된다. 특히 이 여행은 동아시아의 ‘이웃집’ 지역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이국적인 감정과도 다르다.
‘이웃집’ 과 ‘먼 곳’의 개념이 다르다. 대만 시인 라지성(羅智成)의 말씀은 ‘먼 곳은 낯선 곳이고, 이웃집은 익숙하지만 생소한 자람과 지역이다. 어느 사람이 우리 이웃집에 살아 같은 물탱크까지 쓰고 있고 날마다 스치고 지나지만 묵연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r:ead #3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웃집의 기조로 하여 서로 같은 점에 다른 점을 정탐하여 ‘이웃집’의 개념 속에 자기를 찾는다. 예를 들어 이번 r:ead #3 예술가들이 국제 이민 노동자에 대한 화제에 대한 공통적인 관심, 다큐멘터리의 촬영방법에 대한 공통적인 관심, 나라, 국족, 국어 화제에 대한 공통적인 관심이 있다. 서로 이 화제들을 관심하는 동시에 서로 은밀한 관계를 보이게 된다. 예를 들어 오오카와 케이코가 인도네시아 이민노동자를 촬영, 믹스라이스가 인도네시아 이민노동자 마을에 참여, 그리고 대만 소육현의 인도네시아 뱃노래 등이 있다. 동아시아가 노동 체계, 지구화 과정 속의 공통 처지를 여러 차원에 보여준다. 이 공통성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더욱 창조적인, 기동적인, 그리고 계급화를 없애는 대화를 달성하는 지가 극히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내가 다시 백영서의 관점 ‘감지의 동아시아로서’ 를 인용하여 창조적인 대화의 참고 지표로 한다. 동아시아 예술가들이 직면해야 하는 처지는 자기 자신의 창작 환경과 사회환경이다. 이 이중성에 전통의 면상이 있다. 직면해야 하는 것도 현대주의의 개인-세계의 관계와 상상이다. 그러나 이런 감지를 묘사하는 것은 전통적인 데카르트식의 단점 원근법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감지의 동아시아로서’의 관점으로 보면 동아시아의 인간과 사물 자체가 감지할 물건과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 방법은 데카르트식의 원근법이 아니라 서로 ‘굴절’ 의 사이에 다른 자신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감지의 동아시아로서’ 라는 큰 명제로 하려면 동아시아의 비슷한 인물과 사물, 역사, 시간관념, 경제처지, 전쟁 등 공통 문제를 창작 주제에 담게 할 것이고 공통적인 협력 창작과 대화를 진행할 것이다. 이는 내가 r:ead #3 프로그램에 대한 참여 소감이자 후속 건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