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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을 파내고 기억을 묻는다.”에 대한 만남

2015/01/21

r:ead 3의 참여 제안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일본에 리서치를 하러 갈 기회가 생겼다. 사실 일본은 최종 목적지는 아니었다. 우리의 리서치의 최종 장소는 아마도 자카르타, 반둥, 혹은 그 둘레의 섬들이 아니었던가. 다시 생각하면 무엇 때문에 이 리서치를 하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궁금했기 때문에’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솔직할 수도 있겠다. 그래, 나는 궁금했다. 60년 전에, 근대화가 되기 직전, 더군다나 전쟁의 상황에서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만났는지가 몹시도 나는 궁금했다.

큰 줄기에서 이 리서치는 과거 아시아의 근대화 상황에서 디아스포라를 겪은 개인들의 상황을 통해 역사가 개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굴절시켰는지, 그 굴절은 어디로 가야 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만났다. 제주도에서 오사카로 이주한 재일조선인에 관한 상황들을,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인도네시아에 남게 된 조선인 군무원의 기록들을, 그리고 그들을 기록하고 재현한 학자 무라이요시노리와 우쓰미 아이코를, 만화가 미쯔키 시게루의 일기를, 재인조선인 소설가 양석일의 과거와 소설들을. 그리고 그것들 사이 사이의 틈들을.
그러나 그것들은 분절되어 있어 보이지만 연결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아시아 근대성의 구멍이라고 불렀고, 나는 아시아의 근대성의 접혀진 부분이라고 표현하였다.
나는 이 종이의 접혀진 부분들을 펴서 고르게 한 뒤, 그 주름들을 손으로 만지면서 꼼꼼히 보려고 한다.

최종의 목적지가 인도네시아였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거나 자료를 찾을수록 점점 일본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대 아시아의 대부분 국가가 그렇듯이 자신의 기억과 역사를 스스로 기록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냈다. 한국 역시 근대의 많은 자료가 일본이나 기타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 의해 연구되었다. 우리는 타자의 손과 입을 통해 기록된 아시아의 근대성에 관한 맥락도 고민해 보고자 한다. 이 타자의 손과 입은 정치적, 윤리적 측면에서 문제가 될 때가 많지만, 진정한 연구 속 타자의 손과 입은 때로는 중요한 관계 맺음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학자 무라이요시노리와 우쓰미 아이코의 기록과 시게루의 만화는 우리 기억 안에 비어 있는 곳을 더듬어 희미하게 연결 할 수 있는 단초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고리들이 우리를 일본으로 이끌었다.

리서치를 하면서 개인들이 어떻게 버티며 재현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이는 민족, 제국과 식민 그리고 윤리적 측면에 갇혀서 보지 못한 개인의 경험, 잊혀진 존재, 이어지지 못한 풍경들일 것이다. 이 풍경 안에서 우리는 개인들이 무언가를 땅에 묻고 파내는 것을 반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주도에서 오사카로 이주한 이주노동자들은 양석일 소설의 <피와 뼈>, <방을 걸고> 주인공들로 재현되었다. 이들은 육체와 정체성을 변화시키며 근대화를 견디는 내면의 괴물로 자리매김한다. 그들은 어둠 속의 땅에서 쇠를 철을 파내어 생활을 유지한다. 이들은 밤마다 땅을 판다. 오사카 성 주위의 폭파된 땅을 어둠속에서 파낸다.
미쯔키 시게루가 그린 <라바울 전기>의 그림에 의하면 태평양 전쟁 시 배가 고팠던 군인들은 파란 바나나를 일찍이 따서 땅에 묻어 놓았다가 파내 먹었다고 한다. 그 당시 비슷한 환경에서 근무 했던 조선인 군무원들 역시 무언가 땅에 묻으며 생활하지 않았을까? 근대 일본영화계에 몸 담았다가 인도네시아 초기 영화를 연출했던 허영은 이름이 세 개다. 허영(許泳), 후융(Dr.Huyung), Eitaro Hinatsu(日夏英太郞). 그는 일제 시대에 친일적 활동을 벌였다고 알려져 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조선인 군무원을 도와주고, 네덜란드로부터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옹호하며 인도네시아의 독립과정을 다룬 <프리에다>(Frieda)를 제작한다. 이후 그는 수카르노로부터 두 개의 가방을 선물 받았고, 그 가방 속에는 금은 보화가 담겨 있었다고 전한다. 그 가방은 지금도 자카르타 시내 한복판에 묻혀있다고 한다. 다시 앞으로 가면 제주도에서 오사카로 간 재일조선인들은 4.3사건으로 도피한 이들도 일부 있다. 그 4.3 사건 이후 제주도의 밭에서는 종종 사람의 뼈가 파내어 진다.
우리는 군무원들이 땅을 파서 꺼내 먹었던 바나나와 <밤을 걸고>에서 땅을 파서 얻었던 쇠와 고철들, 자카르타 시내에 묻혀 있는 수카르노에게 받았던 허영의 금은보화는 땅속에서 연결 되어 있다고 상상한다.

우쓰미 아이코와 무라이 요시노리가 조선인이 일본의 전쟁 책임을 대신 지고 전쟁범죄인이 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970년대의 일이다. 1970년대 인도네시아인들은 ‘코리아가 뭔야?’라고 되물었다고 우쯔미 아이코는 회상한다. 서로가 서로를 잘 몰았던 과거, 지금도 서로가 서로를 기호적으로만 아는 현재에도 그 ‘모름’속에서 이어갔던 작은 역사와 이야기들은 땅속에 묻혀있다. 이 동선은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와 주변 섬들까지 매우 넓다. 과거의 동선을 지나는 시간이 현재보다 훨씬 길다면 그 동선은 지금의 것 보다 시간적으로 지리적으로도 휠씬 길 것이다. 그 방대한 시간과 거리를 그들이 견디고 무엇을 만났을 지 상상하는 것처럼, 동아시아의 가깝지만 먼 시간과 거리에서 우리가 어떻게 견디고 만나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계기를 R:ead가 마련해 주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온유쥬의 낭독에서 온 몸이 말하는 힘은 다시금 ‘할아버지의 노래’가 ‘할아버지지의 언어’가 무엇이었는지 나를 상기시켰다. 한국의 우리 세대에서 할어버지는 참 낯선 존재라고 생각된다. 나는 한참을 떠올렸지만 ‘할아버지의 언어’가 너무 희미해서 어떤 목소리였는지 어떤 어투였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한 동안은 그것들을 계속 상상해 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