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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가는 과거를 타인의 마음에 어떻게 남길 것인가

2015/01/21

내가 이번 r:ead #3에 참여하게 된 것은 소설가의 온유쥬씨의 권유로 인해서이다. 나와 온씨의 만남은 일년반 전의 일이다. 2013년 3월, 나는 일본 문학작가 리비 히데오(リービ英雄)가 52년전에 가족과 보낸 대만 타이중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여행에서 만났다. 그 여행의 기록을 『이경 속의 고향』이라는 영상작품으로 만들었다. 그 여행의 동반자 중에 한명이 온씨였다.
영화의 내용과 배경을 간단히 설명 드리자면, 리비 히데오(リービ英雄)는 서구출신의 첫 일본문학작가이다. 중국어학자였던 아버지의 일때문에, 6세부터 10세까지 4년간을 대만 타이중에서 보냈다. 그가 4년간 생활한 지역은 일제시대때「모범마을 (Model Village)」이라고 불리워졌던 곳. 일본이 만든 모범적인 (이상적인) 도시였던 것이다. 거기에는 큰 정원이 있어 일본가옥이 세워졌고, 전쟁 전과, 전쟁 중에는 타이중 시장등 일본인이 살고 있었다. 즉 일본이 식민지로 만들려고 한 실험적인 유토피아였다. 1949년 이후에는 같은 위치에 마흔가구 정도의 미국인 가족이 생활했다. 그 중 한 가구가 리비 가족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중국어학교의 교장을 하고 미국인에게 중국어를 가르쳤다. 집 안에는 아버지를 찾아오는 늙은 장군의 중국어가 울려, 살고 있는 집은 전쟁 전의 일본인이 세운 문화주택, 일본인이 남기고 간 책이나 레코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가 사는 집의 높은 담 건너편에는 현지인들이 사는 마을이나, 돼지가 뛰어 다니는 시장에서 대만어가 울리고 있었다. 스스로 선택 방법도 없이 그의 어린 시절은 그런 환경 속에서, 즉 일본과 아시아의 역사 관계 사이에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가족은 그곳에서 붕괴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 땅에서, 대륙에서 온 상해 여성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을 하고, 그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은 그 땅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간다. 리비 히데오(リービ英雄)가 보낸 1950년대의 그 대만은, 결코 그 당시의 많은 현지 사람들이 잘 아는 타이중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현지 사람들의 생활에서 고립된 유토피아 같은 곳이었다. 지리적으로만 그랬었던것 뿐 만이 아니라, 그에게 그 장소는 가족 4명이 유일하게 함께 보낸 곳이기에, 그의 기억 속에서는 영원한 유토피아 인것이다. 그는 이 52년 동안 결코 이곳을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그 감정을 잘 설명하는 문장이 있으므로 인용한다.
‘- 그 섬은 나의 나라가 아니다라고 그 곳을 떠나서야 잘 알게되었다. 그러나, 나의 집은 어디에 있는지, 아니면 어디에 있었는지라고 질문을 받는다면, 그 섬이라고 대답 할 것이다. (중략) 그러나 「나의 집」이 있던 현실의 장소를 다시 방문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략) 바로 그 섬에 가기 위하여, 나는 오랫동안 주저하고 있었다. 주저 한 이유는 정치적이었다. 우리집은 남의 집이 되었다. 그리고 나를 감싸고 있던 풍토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우리집이 있던 섬은 풍토를 지워 버릴 정도로 경제발전을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집이 있던 섬은 동내가 수십년 동안 변하지 않는 서양과 달리, 집도 집의 풍경들도 어쩔 수 없이 단기간에 완전히 바뀌는 동아시아에 있기 때문이다.’
리비 히데오(リービ英雄) (이랴 · 포르 모사 – 43년만의 대만『월경의 목소리』(越境の声)이와나미서점, 2007년부터)
리비 히데오의 반세기 만인 고향의 재방문 배경에는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사적인 소설적 요소와, 동아시아 역사의 요소가 뒤섞여 있었다. 한편으로는 개인 감정의 이야기속에는 동아시아에서 반복된 침략과 식민지지배가 개인에게 남긴 트라우마, 그 곳에 남겨진 흔적을 강하게 느끼는 부분도 있었다. 나는 이 작품의 편집단계에서 이 개인의 감정과 역사적 배경을 어떻게 작품으로 만들어나갈 것인가를 신중하게 생각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과거에 존재했던 시대배경과 그 곳에 있었던 개인의 감정은 이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것.
개인의 기억 속에만 살아있는 것을 영상으로 촬영하고 표현한다는 것은 냉정하게 생각하면 무모하게도 생각되어진다. 동시에 항상 업데이트되는 시간축에서, 다음 순간에는 지난 시간에 휘말려가는 그 자리에 있던 개인의 감정, 공간과 시간을 어떻게 잡아 그것을 재현, 재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시도는, 스스로가 그 곳에 있었던 역사에 대해 알고, 그리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완성된 작품이 시도에 도달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실제로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때 “이 시대의 대만, 중국, 일본, 미국의 관계에 대해 아무것도 작품 속에서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개인적인 테마만 그렸던가?”라는 의견과 질문을 받았다.
이 작품에서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이기도 한 온유쥬씨는 작품이 완성 된 후, 상영 활동에 거의 매번 참여하여 상영 후 관객과의 토론을 함께 진행했다. 그로 인해, 온씨와 나는 표현방법은 달라도 서로 공통적인 주제를 의식하고 있는 동지인것을 알 수 있어, 만나서 의견을 교환 할 때마다 더욱 소중한 존재가 되어 갔다. 상영 때 마다 우리는 이 작품을 여러 번 관객과 함께 보면서, 관객들로부터 다양한 반응을 얻었다. 관객과의 대화 속에서 나는 온씨의 말에 많은 용기를 얻었고, 영상작가로서 소설가로서 그 시간을 공유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끝에 r:ead #3에 참여하게 되었다. 온씨와 나는 이 체재기간 동안, 대만, 한국, 중국의 아티스트와 큐레이터 여러분들과 많은 토론을 하게 되었고, 타인의 의견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았으며, 그것에 대해서 다시 논의하여, 우리들만의 생각으로는 떠오르지 않았던 주제와 의견에 대해 생각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반면에,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 온 대화를 더 명확한 언어로 대체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온씨가 최종 프레젠테이션 중에서도 말했던 “개인적 것에 역사를 포함한다.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개인이 인용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존재했기 때문에 역사는 존재한다”라는 말. 나는 온 씨가 말했던 말을 지금까지도 계속 몇번이나 머리속에서 반복하고 있다. 두사람 다, 이 일에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창작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리고 r:ead #3의 2주일 간의 체류를 끝내고 일본에 돌아온 후, 한가지 더 추가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되었다.
“나는 영상으로 표현하는 재현・재구축은 지금의 진보된 기술에서 예전의 사건을 리얼하게 복제한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나는 거짓말의 세계를 믿게 할 수 있는 것을 마치 자신이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영상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유사체험을 함으로써 자신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금 현재의 영화가 저지른 죄가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허구의 세계를 사실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의 몸에 다가오지 않는 즉, 방관자인 채로 그 사건이나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감정까지도 공유 해버리는 무서운 도구를 손에 가진 것 처럼 생각한다. 그럼 우리가 과거의 개인사에 대해, 거기에 있던 개인의 감정을 마주대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만든다는 것은, 어떻게 마주대해야 하는 것인가. 또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그 자리에 없었던, 경험하지 못햇던 사람이 그 때의 이야기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그때의 사건은 지금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어떻게 지금 시대에 반입할 수 있는지, 시간이 지나 희미해져가는 그 기억과 감정 그리고 역사를, 그 희박함을 인식하면서 우리가 표현하는 수법을 사용해서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잊혀지지않고 어떻게 남겨갈 수 있을 것인가 …”
r:ead #3의 기간 동안, 여러 번 반복해서 나는 아직 모색 중인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참여자인 아티스트 앞에서 말하고,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 다른사람의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이로인해, 자신의 말에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야기가 앞뒤 바껴버리지만 『이경 속의 고향』은 완성했지만, 몇번 봐도 아직도 나는 리비 히데오라는 작가에 대한 신비와 관심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화면에 비치는 그의 모습은 동아시아의 복잡한 역사의 이야기와 그 속에서 흔들리는 개인의 감정이 혼재되어 있기때문일 것이다. 그 사실이 내 마음을 북돋우게하고, 동시에 가슴이 막힐 듯 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감정과 유사한 감정은 온씨의 존재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영화나 소설을 통해 역사와는 다른 방법으로 역사를 알 수 있다고 우리는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보로는 알 수 없는것. 표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신의 인생은 모든 논픽션이지만 논픽션을 만들면서 사람은 그 의미를 알 수 가 있다고, 어떤 토크때 리비씨가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작가가 창작함으로서 사람들은 그것에 관심을 가지게되고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잊지 않고 기억한다. 그것을 몸으로 행동하고 창작하는 작가가 내 앞에 두명이 있다. 그것으로 나는 용기를 얻고, 이 작가와의 관계가 다음의 새로운 작품의 형태로 연결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r:ead #3 의 참여는 내게 새로운 전개의 기회를 제공했다. 나와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 자극을 주고 받는 여행의 파트너였던 소설가 온유쥬의 존재가 이번에는 피사체가되고 있었다. 그것은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상상이상으로 빠른 전개였다.
이 체류 동안, 온씨가 태어난 대만에서 직접 소설의 원문을 찾아, 보고 듣고 체험하고 그것에 대해 말로 표현 했다. 최종프레젠테이션에서 그녀는 마지막 부분에 「대만 할아버지에게 편지」라는 시를 대만어로 낭독하고, 그 자리에 있던 우리는 그 육성을 들었다. 나는 한명의 소설가가 앞으로 창작의 영역에 발을 디뎌가는 출발점을 목격하고, 그로 인해 나 스스로 새로운 창작도 시작했다. 우리들은 이 체류 동안 말로 표현한 신념을 가지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과거 역사의 트라우마로 인해 침묵하게된 개인의 말을 표현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어, 잊을 수 없는 것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이하 최종프레젠테이션을 인용하겠습니다.


불과 일년반 전에『이경속의 고향』촬영을 계기로 나는 온씨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소설은 일상의 개인의 삶과 거기에서 서로 감정을 떠오르게한다.
그녀는 그렇게 독자에게 접근하여 부드럽게 작품세계에 끌어들여 뭔가를 뉘우치게한다.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나는 알지 못했다, 무지였던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그녀의 창작 방법에 공감을 느꼈다, 나 스스로도 영상표현에서 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는 표현방법이 달라도 서로 같은 방법으로 (예를들어 과거와 현재의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장소와 기억에 관하여) 전하려고 하고있다.
온씨가 먼저 말했듯이 “개인이 있었기 때문에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평소 생각하고있다. 그녀와 함께 이 r : ead에 참여한 여러분과 함께 토론을 하면서 우리는 더욱 이런 생각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고,“개인이 있었기 때문에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재확인 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을 더 탐구하는 동반자로 온씨는 나를 이 r : ead 프로젝트에 초대 해 준 것이라고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녀가 쓰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나는 살아있는 온씨가 매력적이다. 그녀의 이 작은 몸에는 많은 갈등과 혼돈과 말과 감정과 시대와 역사와 풍토가 뒤섞여있는 그 몸과 거기에서 나오는 육성 또한 나를 흔든다.


최종프레젠테이션을 향한 2일간의 준비시간 동안, 온씨는 대만문학관에 『로혁약 소설』을 찾아갔다. 세세한 내용은 온씨의 설명대로이기에 생략한다. 온씨는 여기에서 로혁약의 소설 『백목련(白木蓮)』하고 감동적인 조우를 한다. 내가 여기서 조우한 것은, 소설「백목련(白木蓮)」과 현대 소설가 온유쥬가 만난다는 것이다. 문학관에서 찾았던 그의 일기를 둘이서 열심히 보고 있었는데, 70년전에 쓰여진 소설『백목련』을 다른 동행자였던 ZOE가 찾아왔다. ZOE는 대만에서 태어나 자라 여기에서 우리의 말을 통역 해준 사람입니다.
ZOE씨는 유창한 일본어와 대만어를 사용하고 r:ead기간 내내 우리의 일본어 통역으로 곁에 있으면서 지원해 주었다. 온씨와 저, ZOE씨는 일본어라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일상의 농담, 또 진지한 토론까지 모든 이야기를 공유하고 말을 주고 받았다. 아무런 위화감도 어색함도 느끼지 않으면서.
로혁약의 소설『백목련』을 통해, 두사람이 대화를 시작했다.
그냥 일상을 보내고만 있다면 떠올리지 못하고 스쳐지나가고 말 두사람의 대화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카메라 뒤에서 투명한 존재가 되는 감각을 느꼈다.
내가 촬영자로 피사체와 마주할 때의 신체 상태.
눈앞에 나타난 공간과 거기에 흐르는 감정과 말을 나누고 싶을 만큼 나의 존재는 투명하게 되어간다, 두사람과는 대조적으로 나에게는 언어로 말하는 감각이 없어져 간다.
두사람의 모든 대화가 그대로 직접 몸 안에 들어간다.
그때 내 머리는 매우 뉴트럴한 상태이다.

70년전에 일본어로 작성된 대만인 소설작가를 둘러싸고 지금을 살고있는 동세대의 두 사람이 말했다.
책상 위에는 70년 전에 쓰여진 로혁약책이 놓여져 현재 시간이 흐르는 이 공간에서 마주 보면서 두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은 공공의 준비된 장소에서는 좀처럼 말하지 못하는 두 사람의 삶의 이야기이다.
그 대화와 감정이 보일 듯 말 듯 하는 두사람의 표정과 몸짓을, 나는 영상으로 받고 그 배경에 있는 시각화 할 수 없는 요소를 이미지로 잡으려고 한다.
그 화면 밖에 있는 시간과 공간과 감정을 잡으려 온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2주일 간의 타이난에서의 체류를 끝내고, 새로운 창작이 시작하는 예감을 함께 느끼고 있다.
일본에 돌아간 후 온씨는 분명 새로운 번역의 형태로 그녀의 해석으로『백목련』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를 내가 찍어가는 것이다.

내가 그 동안 찍은 소재를 여기에서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다. 아직 제대로 된 윤곽은 잡혀져 있지 않기때문에, 이 소재를 사용하게 될지도 어떨지 모른다.
단지 지금의 단계에서 내가 제안할 수 있는 것은, 초기단계의 이 소재를 여기서 보고 나 자신 이 소재에서 뭔가를 재발견 할 수 있는지도 모르고, 여러분과 이 단편을 공유함으로써 서로 생각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분의 라슈 (편집에 이르지 않은 소재를 늘어놓은 상태 시사)를 보아주세요.
(※이하 그 자리에서 흘린 라슈에서 뽑아 낸 것)

Okawa1
(로혁약의 소설『백목련)의 일본어 원문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중국어로 번역 된 것을 발견한다)

Owaka2

Okawa3

Okawa4

Okawa5
(온씨와 Zoe는 로혁약 책을 끼고 각각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작도 되지 않은 프로젝트의 보고와 제기가 되어 버렸습니다만, 이것으로 내 프레젠 테이션을 끝마치겠습니다.


온씨와 나의 최종프레젠테이션 후 r:ead #3에 한국에서 참여한 아티스트 mixrice의 조 지은씨는 온씨의 표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인상에 남는다.
“온씨가 하고 있는 것은 재현에 대한 재현의 시도, 아시아의 굳어버린 역사를 풀어내는 작업”그리고 큐레이터인 안서현씨도 “온씨의 육성 시 낭독은 말로 만이 아니라 온 씨의 생각이나 느낌이 음성에 압축되어 있다… 온씨의 문장에서 떨어져버리는 것을 영상으로 표현한다. 소설과 영상, 두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이 될 것 같은 작품 작업을 하고 있는 느낌을 가진다.”체류동안 많은 대화를 거듭한 이 두분의 말에 나는 지금 다시 감사하고 있다.

r:ead #3 체류로 인해, 온씨와 나는 확실한 새로운 전개의 시작을 하는 계기를 찾을 수 있었다.

Nov.20 2014